<박씨전>에는 역사적인 인물이 많이 등장한다. 이시백, 임경업, 김자점, 인조 등은 실제로 존재했던 인물들이다. 그러나 임경업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무능하고 나약하며 부정적인 인물로 그려져 있다. 따라서 이야기는 이러한 실존 인물들을 따라 전개되는 것이 아니라, 작가가 만든 허구적 인물인 박씨를 통해 병자호란이라는 씻을 수 없을 만큼 치욕스러운 전쟁을 극복하는 모습을 보여 주고 있다.
조선 후기에 작품 내적이나 외적으로 여성들이 소설의 창작이나 유통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특히 여성이 남성보다 적극적으로 등장하는 여성 영웅소설은 현실에서 이루어지기 어려운 꿈을 반영하고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사람들은 전란으로 입은 상처와 전란을 겪고 나서의 생활고 등으로 힘들 때마다 초인적 능력을 가진 누군가가 나타나 고통을 치유해 주었으면 하고 상상했을 것이다. <박씨전>은 바로 이러한 시대 상황 속에서 특히 여성들의 의식이나 소망이 반영되어 나타난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조선 후기 여성들은 가부장제와 여러 현실에 불만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한 항거 의식에 초인적인 예지와 도술이 가미되어 새로운 여성상을 만들었는데, 그러한 여성상이 최초로 등장한 것이 바로 <박씨전>이다.
대부분의 여성 영웅소설에 등장하는 여주인공은 남장(男裝)을 하며, 과거급제를 통해 출세한 후 시댁 가문의 적이자 결연의 방해자를 처단하는 등 여성 주도로 남녀이합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그러나 <박씨전>은 여성 영웅소설의 시발(始發)이 되는 작품으로 여성의 활동이 가정적 범주에서 벗어나 사회적·정치적 문제까지 확산되어 있다는 점에서 대단히 선진적인 여성상을 보인다. 또한 이시백이나 인조, 임경업, 김자점 등 역사적으로 실재한 남성들의 능력에 대비되는 여성의 잠재적 능력을 드러내고, 호왕이나 호장과 민족적 대립에서도 우월성을 보인다. 여성을 하나의 정물적 존재로 보는 시각이 강하던 당시 풍토에서 이러한 박씨의 능력은 매우 주목할 만한 일이며, 그 점에서 <박씨전>은 전통적 여성관과 어느 정도 구별되는 시각을 보여 준다. <박씨전>에는 내외법에 따라 엄격하게 제한되었던 여성의 역할과 직분에서 벗어나 여성의 사회적, 정치적 참여 의지도 보다 적극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그러므로 <박씨전>은 일종의 조선판 페미니즘 소설로 보아도 무방하다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