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날같이 따스하고 털자리같이 푸근한 기분을 주던 이른 겨울 어떤 날 오후이었다. 일주일 전에 우리 집에서 떠나간 어멈의 엽서를 받았다. 이날 오후에 사에서 나오니 문간에 배달부가 금방 뿌리고 간 듯한 편지 석 장이 놓였는데 두 장은 봉서이었고 한 장은 엽서이었다. 봉서 중 한 장은 동경 있는 어떤 친구의 글씨였고 한 장은 내 손을 거쳐서 어떤 친구에게 전하라는 가서(家書)이었다. 나머지 엽서 한 장은 내 눈에 대단히 서투른 글씨였다. 수인란에 ‘경성 화동 백 번지 박춘식씨(京城花洞 百番地朴春植氏)’이라고 내 이름과 주소 쓴 것을 보아서는 내게 온 것이 분명한데 끝이 무딘 모필에 잘 갈지도 않은 수묵을 찍어서 겨우 성자(成字)한 글씨는 보도록 새 서툴었다. 나, 이 순간 묵은 기억을 밟다가 문득 머리를 지나는 어떤 생각에 나로도 알 수 없는 냉소와 같이 엷은 불쾌한 감정을 느끼면서 발신인란을 다시 자세 보았다. 그것은 벌써 일 년이나 끌어 오면서 한달에 한두 장씨 받는 어떤 빚장이의 독촉 엽서 글씨가 지금 이 엽서 글씨와 같이 서투른 솜씨인 까닭이었다. ‘함북 ××읍내 김씨 방 홍성녀(咸北 ××邑內 金氏方洪姓女)’ 이것이 발신인의 주소와 성명이었다. 이것을 본 나는 즉각적으로 그 누구에게서 온 편지인 것을 느끼는 동시에, 이 편지와는 사촌 격도 안 되는 편지를 생각하고 불쾌를 느끼면서 혼자 말초신경 쓰던 것을 내 스스로 입술을 살근히 물면서 찬웃음을 치지 않을 수 없었다. “여보, 시골 간 어멈이 편지했구려!” 나는 좀 반가운 음성으로 곁에 선 아내를 보면서 뇌고 다시 엽서에 눈을 주었다. 내 손에 쥐인 엽서는 어느새 뒤집히었었다. “응, 어멈이 편지했소!” 아내의 목소리는 의외의 사람에게서 의외의 반가운 소식이나 받은 듯이 기쁘게 가늘게 떨렸다. 나는 그 말 대답은 하지 않고 편지 사연을 읽었다. 아내도 부드러운 시선을 고요히 편지에 던졌다. 이래서 두 사람의 네 눈은 소리 없이 편지를 읽었다. 사연은 극히 간단하였다. ‘서방님, 기체 안녕하십니까. 아씨도 안녕하신지요. 어린 애기는 소녀가 떠날 때에 몹시 앓더니 지금은 다 나았는지 알고자 합니다. 소녀는 서방님이 지도하신 덕택으로 무사히 와서 잘 있읍니다. 이곳 댁도 다 안녕하십니다. 소녀의 손으로 쓰지 못하는 글이되와 이렇게 문안이 늦었사오니 용서하옵시고 내내 서방님 내외분 기체 안강하옵소서. 끝으로 대단 황송하오나 어린 애기의 병이 어떤지 알게 하여 주옵소서.’ 이것이 그 사연의 전부이었다 . 역시 무렁 붓에 수묵을 찍어 쓴 서투른 글씨였다. 그것도 잘게 쓰느라고 어떤 자는 획과 획이 어울어져서 ‘사’자인 지 ‘자’자인지 알기 어려운 자도 있었다. 토는 물론 틀린 것이 많았다. 이것을 읽은 내 가슴에는 엷은 애수의 안개 같은 구름이 가볍게 돌았다. 거칠은 겨울이언만 이날은 아침부터 봄같이 따스해서 설면자(雪綿子) 같은 기분이 사람의 혈관을 찌르는 탓도 없지 않아 있겠지만, 그 엽서 한 장이 내게 던지는 기분은 부드럽고 가볍고 불쾌가 없는 엷은 동정의 애수이었다.
봄날같이 따스하고 털자리같이 푸근한 기분을 주던 이른 겨울 어떤 날 오후이었다. 일주일 전에 우리 집에서 떠나간 어멈의 엽서를 받았다. 이날 오후에 사에서 나오니 문간에 배달부가 금방 뿌리고 간 듯한 편지 석 장이 놓였는데 두 장은 봉서이었고 한 장은 엽서이었다. 봉서 중 한 장은 동경 있는 어떤 친구의 글씨였고 한 장은 내 손을 거쳐서 어떤 친구에게 전하라는 가서(家書)이었다. 나머지 엽서 한 장은 내 눈에 대단히 서투른 글씨였다. 수인란에 ‘경성 화동 백 번지 박춘식씨(京城花洞 百番地朴春植氏)’이라고 내 이름과 주소 쓴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