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석 저자 백석(白石, 1912∼1996)은 본명 백기행(白夔行)]은 1912년 평안북도 정주 출생이다. 1929년 오산고보를 졸업하고, 이듬해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단편 소설 그 모(母)와 아들이 당선되었다. 이 작품에서 백석이란 필명을 처음으로 사용했다. 조선일보 장학생으로 뽑혀 일본 유학의 길을 떠나 도쿄의 아오야마학원(靑山學院) 영문과를 다녔고 1934년에 졸업했다. 귀국 후 조선일보사 기자로 입사해 계열 잡지 ≪조광≫, ≪여성≫ 등의 편집을 맡았다. 1935년 시 정주성을 조선일보에 발표하면서 시인으로 데뷔했다. 1936년에는 첫 시집 ≪사슴≫을 선광인쇄주식회사에서 100부 한정판으로 발간하고 문단의 벗들과 서울 태서관에서 출판기념회를 가졌다. 1936년 함경남도 함흥의 영생고보 교원으로 직장을 옮겼다. 1938년 교직을 사임하고 서울로 돌아와 조선일보에 복직했다. 1939년 식민지조선에서의 생활을 정리하고 당시 만주제국의 수도 신징(新京)으로 이주했다. 1940년 토마스 하디의 장편 소설 ≪테쓰≫의 번역 출판을 위해 서울에 잠시 다녀갔다. 1941년 만주에서는 측량 보조원, 소작인 생활, 세관 업무를 보는 관리 등에 종사했고 북방의 여러 지역을 떠돌았다. 1945년 일제 패망과 더불어 고향으로 돌아와 한때 과수원 관리인을 하면서 시간을 보내다가 평양에서 고당 조만식 선생의 비서로 활동했다. 김일성정권 수립 후 북조선 문학예술총동맹 제4차 중앙위원회 외국문학 분과원으로 일했고 김일성대학에도 출강했다. 1949년 러시아 작가 숄로호프의 방대한 장편소설 ≪고요한 돈≫을 백석 특유의 문체로 번역 출판했다. 1956년 아동문학에 특별한 관심을 갖고 창작에 몰두하며 여러 편의 아동문학 평론을 발표했다. 평양 ≪문학신문≫ 편집위원으로 일했다. 1957년 동화시집 ≪집게네 네 형제≫를 발간했다. 1959년 평양 문단에서 숙청되어 삼수군 관평리의 협동농장으로 내려가 이후 36년 동안 양치기 일에 종사했다. 1962년 북한 문단에서의 복고주의 비판에 연루되어 모든 창작활동을 중지하고 산골에서 가족들과 조용하게 살다가 1995년 83세로 사망했다. 1987년 분단 이후 최초로 서울에서 ≪백석 시 전집≫(이동순 편, 창작과비평사)이 출간되었고, 이 책은 백석 연구의 기점이 되었다.
백석 저자 백석(白石, 1912∼1996)은 본명 백기행(白夔行)]은 1912년 평안북도 정주 출생이다. 1929년 오산고보를 졸업하고, 이듬해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단편 소설 그 모(母)와 아들이 당선되었다. 이 작품에서 백석이란 필명을 처음으로 사용했다. 조선일보 장학생으로 뽑혀 일본 유학의 길을 떠나 도쿄의 아오야마학원(靑山學院) 영문과를 다녔고 1934년에 졸업했다. 귀국 후 조선일보사 기자로 입사해 계열 잡지 ≪조광≫, ≪여성≫ 등의 편집을 맡았다. 1935년 시 정주성을 조선일보에 발표하면서 시인으로 데뷔했다. 19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