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그 이름이 아직 성웅이 아니었던 때가 있었다.
사람을 살렸고, 사람을 잃었고, 억울한 일을 당하면 화를 냈다. 자신이 옳다고 믿은 일이 정말 옳았는지 오래 붙들고 있어야 할 때도 있었다.
1587년, 녹둔도.
이순신은 적은 병력으로 여진의 습격을 막아냈다. 백성을 구했지만 돌아온 것은 칭찬이 아니라 문책이었다. 패전의 책임을 물어 관직을 잃었고, 백의가 되어 다시 전장으로 갔다.
그런데 이번에는 사정이 달랐다.
얼마 전까지 제 마을이 불타는 것을 지켜보던 사람이, 이제는 남의 마을에 불을 놓으라는 명령을 내려야 했다.
전쟁에서는 이겨야 했다.
명령도 따라야 했다.
그렇다고 마음까지 그 명령을 따라가는 것은 아니었다.
《백의》는 이순신을 더 위대한 사람으로 만들기 위해 쓴 이야기가 아니다. 그렇다고 그를 깎아내리려는 이야기도 아니다.
그저 그 이름 뒤에 있었을 한 사람을 들여다본다.
자기 판단으로 누군가를 살리기도 하고, 또 누군가를 잃기도 했던 사람. 옳다고 믿고 내린 명령이 다른 사람에게는 평생 지워지지 않을 상처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알아가는 사람. 그리고 그 사실을 안 뒤에도 다음 날이면 다시 일어나 자기 일을 해야 했던 사람.
영웅은 처음부터 영웅이었을까.
아니면 잘못과 책임을 피하지 않은 채, 몇 번이고 자기 자리로 돌아간 사람이었을까.
전쟁이 끝나고 사람들이 흩어진 뒤, 이순신이 돌아가는 곳은 뜻밖에도 평범하다.
고향 집.
그를 기다리는 가족.
그리고 함께한 한 그릇의 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