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광수(1892-1950) 평안북도 정주에서 태어났으며, 호는 춘원(春園)이다. 그는 다섯 살에 한글을 비롯한 천자문을 깨칠 정도로 명석했으나 11세 때 부모가 사망하여 졸지에 고아가 되어 외가, 재당숙 집을 전전했다. 동학운동을 계기로 유학생에 선발되어 일본에서 공부할 기회를 얻었다. 이후 와세다 대학에 진학해 유학하던 중, 장편소설 「무정」을 매일신보에 연재하며 본격적인 소설 집필을 시작했다. 1919년엔 상해로 가서 안창호를 보좌하면서 ≪독립신문≫의 사장 겸 편집국장에 취임했고, 2·8 독립 선언서를 썼으나, 2년 뒤 일본에 붙잡힌 뒤 친일파로 변절했다. 그는 이때부터 변절자라는 비난을 받았으며, 1910년대에 지녔던 진보성을 상실하고 봉건적이며 친일적인 문필활동과 행적을 보이기 시작한다. 1922년 '민족개조론'을 발표하여 민족진영에 물의를 일으키며 문단에서 소외당했다. 한편으론 언론계에 종사하면서 여러 작품을 지속적으로 발표하기도 했다. 1950년 6·25전쟁 발발 이후 북한에서 사망했다. 대표작으로는 무정, 어린 벗에게, 마의태자, 단종애사, 이순신, 흙, 이차돈의 사, 원효대사, 꿈 등이 있다.
이광수(1892-1950) 평안북도 정주에서 태어났으며, 호는 춘원(春園)이다. 그는 다섯 살에 한글을 비롯한 천자문을 깨칠 정도로 명석했으나 11세 때 부모가 사망하여 졸지에 고아가 되어 외가, 재당숙 집을 전전했다. 동학운동을 계기로 유학생에 선발되어 일본에서 공부할 기회를 얻었다. 이후 와세다 대학에 진학해 유학하던 중, 장편소설 「무정」을 매일신보에 연재하며 본격적인 소설 집필을 시작했다. 1919년엔 상해로 가서 안창호를 보좌하면서 ≪독립신문≫의 사장 겸 편집국장에 취임했고, 2·8 독립 선언서를 썼으나, 2년 뒤 일...